AI가 정치를 한다면
영국에서 AI 정치인이 등장해 큰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이번 영국 총선에 'AI 스티브'라는 이름으로 출마한 후보는 실제로는 AI 기업 회장인 스티브 엔더콧이지만, 유세 활동은 AI 챗봇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AI가 정치인을 대체할 수 있을까?
AI가 인간의 많은 영역을 대체하지만, 그 대상이 정치라는 사실은 우리에게 양가적인 감정을 불러 일으킵니다. 왠지 거부감이 들기도 하지만, 차라리 나을지도?하는 생각도 들게 하죠. AI 스티브에 대해 한 영국인은 "정치인이나 AI나 거짓말을 하는 건 마찬가지"라고 비꼬기도 했어요.
실제로 AI 정치인에 대한 거부감은 상상 이상으로 낮은데요. 2021년 5월 27일, 스페인 IE 대학의 혁신 거버넌스 센터(Center for the Governance of Change)에서 11개국 시민 2769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 결과, "국회의원 의석 수를 줄이고 그 자리에 인공지능으로 대체하는 것"에 대해 전체 응답자의 51%가 긍정적으로 응답했습니다. 특히 25세부터 34세 사이의 청년 세대에서는 찬성률이 60%에 달했습니다.
사실 스티브가 첫 AI 정치인은 아닙니다. 2018년 러시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AI '앨리스'는 2만5000표를 득표했으며, 같은 해 도쿄도 다마시 시장 선거에서는 AI 대리인 마쓰다 미치히토가 3위를 기록한 적도 있죠.
AI가 '정치'하는 법
그럼 이런 AI 정치인들은 어떻게 정치를 하게 될까요? 2023년 브루스 슈나이더와 네이선 샌더스는 <MIT 테크놀로지 리뷰>에 "인공지능이 정치를 바꿀 수 있는 6가지 방법"이라는 제목의 글을 발표했는데요. 이들이 정치에 미칠 수 있는 위협에 대한 이야기 말고, 다른 잠재력에 대해 생각해보자는 취지로요. 그리고 ‘인공지능이 주도하는 민주정치의 새로운 시대'가 지금 불가능하더라도 가까운 미래에 달성 가능할 것이라고 하면서 인공지능 정치의 다음 목표로 6가지를 제시했습니다.
<단기적 목표>
① 인공지능이 생성한 증언이나 논평을 입법부나 기관이 수락하는 것
② 인공지능이 작성한 법안이 새로운 입법 개정안으로 채택되는 것
③ 인공지능에 의한 선거 캠페인이 기존의 선거 컨설턴트를 능가하는 것
<중장기적 목표>
④ 인공지능이 자체 플랫폼을 갖춘 정당을 만들어 선거에서 승리할 인간 후보자를 유치하는 것
⑤ 인공지능이 정치 자금 조달을 위해 자율적으로 수익을 창출하고 정치 캠페인에 기여하는 것
⑥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며 정책적 결과를 도출하는 것
위 목표에 근거해 구체적인 시나리오를 망상해 보자면...
① 법안의 허점을 AI가 찾아내어 논평 생성
② 기존 법안들을 모두 모델에 부어넣고 생길 수 있는 허점 찾아서 신규 법안 만들고 이걸 국회에서 채택
③ 선거 캠페인 홍보 전략 수립, SNS 콘텐츠 및 광고영상 생성
④ (이건 AI 정치인이 자체적으로 출마할 수 있다면 해결되는 문제입니다.)
⑤ 선정된 AI 후보자를 모델로 굿즈 만들어서 정치자금 조달 + 후원금 유도를 3번 과정의 목표로 수립
⑥ 1, 2에서 만든 산출물로 정책적 결과 도출해가며 여기서 쌓인 데이터를 근거로 정치판에서 광폭행보
기존 정치에 엮인 감정적 문제들과 AI라는 매력적인 대안
위에 언급한 시나리오를 인간의 수준을 뛰어 넘어서 수행할 수 있을 정도로 AI가 기술적 완성도를 갖춘 상태는 아닙니다. 게다가 AI는 감정과 인간적인 이해관계를 가지지 않기 때문에 인간 정치인이 가져야 할 공감 능력이나 도덕적 판단에서 부족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러한 '감정', '기준', '이해관계'같은 요소들을 결국 누군가가 모델에 코딩해야 한다는 점도, AI의 객관성에 의문을 만들죠.
정치의 무서운 점은 위와 같은 합리적 고민들의 무의미한, '감성'의 영역이기도 하다는 점입니다. 개인적으로 "감정적인 인간보다 객관적인 AI가 낫다"는 사람들의 직관적인 인식이 가장 무섭다는 생각입니다. 요즘처럼 AI의 덕을 많이 보고 있는 세상 속에선 실망스러운 판단들로 신뢰를 잃은 정치인들보다 AI가 낫다는 생각이 들 수 있으니까요. 이렇게 인간 정치에 대한 실망이 큰 만큼, AI 정치에 대한 기대는 나날이 커지고 있습니다. AI가 세운 국가 정책을 인간이 따르는 그림은몇 년 전까지만 해도 어색하고 비현실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생각이 각자의 극단으로 향해있는 지금은 어쩌면 그럴듯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을 활용해서, 뒷단에선 모두 인간이 컨트롤 하지만 겉으로만 "AI 정치인"의 탈을 씌워놓고 이익을 창출하는 집단이 생기겠다는 생각도 드네요.